도전과 혁신

새로운 도전으로 이룬 LG화학의 기술력

EPISODE.01깨지지 않는 뚜껑을 만들자!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LG화학의 전신)에서 출시한 ‘럭키크림’ 소비자들의 인기를 얻으며 한창 잘 팔리고 있을 때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용기 뚜껑이 잘 깨져 상인들의 항의를 자주 받았던 것이다.

“깨지지 않는 뚜껑이 어디 없겠나? 이것 속상해서 못해먹겠다. 누가 연구 좀 해보지 않겠나?”

당시 국내에는 합성수지가 생산되지 않는 상황이었고, 플라스틱이란 말도 생소한 때라 깨지지 않는 크림통을 만드는 일을 알아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하지만 오랜 노력 끝에 합성수지로 만들면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플라스틱 제조를 위해서 사출성형기, 금형, 원료와 같은 합성수지제품 시설을 갖추어야 했다. 이는 전쟁 중 전 재산이나 다름 없는 거액을 투자해야 했으며, 기계 도착에 1년이란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제품 생산을 위해서는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결국 미국에서 사출성형기 한 대를 도입해 깨지지 않는 용기를 만들게 되었다. 그 때의 결단이 우리나라 플라스틱 시대를 열었음과 동시에 LG화학의 석유화학산업의 대장정이 시작된 역사적인 계기가 되었다.
EPISODE.02우리나라 플라스틱 제품 시대를 열다
크림통 뚜껑 개발을 계기로 주력사업을 ‘플라스틱’으로 바꾸게 된 락희화학.
1952년 ‘Oriental ‘이라는 상표로 국내 최초의 플라스틱 빗을 출시했다. 가볍고 사용하기 편리하다 보니 시장의 인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먼저 물건을 받으려는 상인들이 연일 장사진을 이루었고, 물건을 싣고 가다 외국산 밀수품으로 오해를 받아 곤욕을 치르는 도매상도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국산 기술로 만든 플라스틱 빗에 대해 보고 받고 나에게도 하나 줄 수 없느냐고 말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로 당시 우리나라의 공업 기술 수준에서는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우리나라에 플라스틱 제품 시대를 연 락희화학은 이후 세숫대야, 일반 식기류, 비닐 장판 등 생활용품부터, PVC 파이프, 폴리에틸렌 필름 등 산업용 제품까지 출시하며 시장의 판도를 바꾼 것은 물론, 사람들의 삶을 더욱 편리하게 개선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이어 1960년대는 합성세제를 출시해 세탁문화를 바꿔놨으며, 1970년대는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 창호를 출시해 PVC 창호시대를 개척하며 주거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 합성세제, 치약 등의 생활용품은 2001년 ‘LG생활건강’으로, 창호 등의 산업재는 2009년 ‘LG하우시스’로 분사
EPISODE.03플라스틱 제품이 아니라 원료에 눈을 돌리다
락희화학은 국내 최초의 합성수지 제품인 빗과 비눗갑 생산을 시작으로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을 시장에 선보이며 플라스틱 가공사업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때 주력사업 전환의 계기가 되는 프로젝트 건의서가 올라왔다. 락희화학의 숙원인 플라스틱 원료의 계열화를 제안하는 석유화학 사업 검토 보고서였다.
"우리 회사에서 생산하는 플라스틱 원료를 스스로 조달하는 원료의 계열화를 달성하려면 우리가 직접 석유화학 사업에 뛰어들 필요가 있다.” 는 내용이었다.

민간 기업으로서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파급하게 될 석유화학 사업을 해보자는 의견에 신중해질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당시 사회 분위기로도 민간 기업이 국가 기간산업에 진출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당시로서 성패가 불투명하고 어려웠으나 미래를 위해 과감히 도전했다.

그 결과 , 여러 번의 우여곡절을 이겨내고 1977년 여천공장(지금 여수공장)에 PVC 공장을 시작으로 유리섬유공장, ABS 공장을 준공하며 원료사업에 본격 진출했으며, 마침내 1991년 국내 최대 나프타 생산공장을 완공하며 종합석유화학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
EPISODE.04NCC, 누구도 달성하지 못할 것 같은 마의 기록을 넘다
LG화학이 만드는 다양한 기초소재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 원료인 나프타에 닿는다. 원유의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는 ‘나프타 크래킹 센터(NCC)에서 크래킹된다. 크래킹은 750~850°C에서 열분해하여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원료인 에틸렌, 프로필렌 등을 만드는 것으로 석유화학공업에서 가장 중요한 제조공정이다.
이런 NCC공장은 고온으로 제품을 만드는 공정 특성상 에너지 소비가 많아 에너지를 얼마나 적게 사용하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런 가운데, LG화학 여수 NCC 공장은 전세계 115개의 NCC 공장 중 에너지 효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선정되었다. 1kg의 에틸렌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양을 ‘에너지 원단위’라고 하는데, 여수 NCC 공장은 세계 최초로 3천원대 에너지 원단위를 달성했다.

이는 업계에서 누구도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여기던 마의 4천원대 에너지 원단위를 깬 세계 최초의 사례다. 전 세계 115개 NCC 공장의 평균 에너지 원단위가 7천원대 인 것을 감안하면 평균치의 절반 정도다. 이로써 여천 석유화학단지에 준공된 나프타분해공장 (NCC, Naphtha Cracking Center)이 국내 석유화학산업 발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EPISODE.05고유 기술로 기존 강자를 물리친 편광판 필름
1990년 대 중반 LG화학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편광판 사업을 선정했다. 빛을 일정 방향으로 통과시켜 화상을 구현하는 LCD 핵심 소재로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편광판 필름은 당시 일본업체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고난도의 초정밀 제품인 편광판 개발 초기에 시행착오를 줄이고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 기술을 보유한 일본기업에 기술협력을 요청했으나 일본은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일본 기업의 거절 후 오히려 투지를 불태우게 되었다. “우리가 해내고 만다”

연구개발에 매진한 결과, 1999년 1호 라인을 가동하며 시험생산부터 양산까지 불과 2년 만에 초고속 개발을 이뤄냈다.
하지만 일본기업들이 제품 판매가를 20% 가까이 낮추며 노골적으로 견제했다. 또한 내부적으로도 70% 이하의 낮은 수율이 문제였다.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가며 기술력을 확보해 나갔으며, 생산공정 개선에 따른 원가 절감으로 수익성 또한 개선됐다. 제품개발 18개월 만에 경쟁사 수준의 품질과 수율을 달성한 것이다.

이후, 자체 기술력을 키워 편광판 시장의 전통적인 강자였던 일본 업체들을 하나 둘씩 제치고 마침내 편광판 시장에서 세계 1위에 올랐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기술력을 키워 세계 시장을 석권하기까지 열정과 땀방울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EPISODE.062차 전지 사업 더 먼 미래를 보고 추진하다
1996년 매우 열악한 상태에서 리튬이온 전지 연구를 시작한 LG화학. 전지 전공자가 하나도 없었으며, 그나마 ‘부식'전공자와 니켈수소전지 대한 경험자가 전부였다. 일본에 공부하러 간 사람이 얻어온 전극을 보면서 분석하는 수준이었다. 당시 히타치 등 일본 메이저 업체와 기술제휴를 시도했으나 견제로 인해 기술제휴는 물론 설비나 재료 자원도 거절당했다.
차선책으로 일본 신규업체들을 설득하여 간접적으로 설비 지식을 얻어 나갔고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개발과 동시에 파일럿 테스트를 병행해 나갔다. 이런 노력으로 1997년 노트북 PC 등에 쓰이는 소형전지의 시험 생산에 처음으로 성공했고 1999년에는 국내 최초로 리튬이온 전지 양산에 성공했다.

하지만 품질 수준이 기대 이상 도달하지 못했고, IMF 구제금융 여파로 사업 구조조정이 국내 경제계의 화두가 되면서 2차 전지 사업은 위기에 봉착했다. 2001년 최고경영자(CEO) 회의에서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전지사업을 계속 끌고 가야 합니까? 소니와 산요 같은 세계적인 전자회사들이 이미 전지개발에 열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화학업체인 LG화학이 계속 사업을 밀고 나갈 필요가 있을까요?"라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10년 가까이 투자해왔는데도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사업을 계속 끌고 가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구본무 회장은 단호하게 논의를 마무리하는 발언을 했다. "포기하지 말고 길게 보고, 투자와 연구개발에 더욱 집중해야 합니다. 저는 전지사업을 계속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꼭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시작합시다."
EPISODE.07과감한 선택과 쉽지 않은 도전, 자동차전지 세계 1위가 되다
자동차전지 시장이 활성화되기 전, 이 분야 진출에 대한 의사결정은 쉽지 않았다. 안전성과 성능, 양산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어려웠고, 연구개발을 위한 대규모 투자에 대한 위험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LG화학은 미래 시장의 기회가 여기에 있다고 판단해 2000년, 미국에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연구를 전담하는 법인을 설립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하지 않았다. 연구 인력을 100여 명 수준으로 확대하며 연구에 박차를 가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다. 회사 내부의 우려가 커지며 사업의 존폐가 끊임없이 거론됐다. 위기를 벗어날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객 확보가 필요했다. 주요 목표는 GM.
2006년 'Tech Fair'에 참여해 GM의 전기자동차 프로그램에 참여해볼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나 제출한 샘플에 문제가 있어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LG화학의 역량과 치열한 모습은 이후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불씨가 되었다.

2007년 GM이 볼트(Volt) 전기차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LG화학에 검증 프로세스를 밟으라는 연락이 왔다. 6개 사 중 최종 2개 회사로 선택됐으나 상대 기업이 선정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사업의 미래가 달린 LG화학도 그만큼 절박했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불가능할 정도로 빡빡한 개발일정을 맞추며 샘플팩을 제출했으나 배터리 성능이 수개월 지나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개발계획, 개선내용, 평가방안 등 모든 사항을 GM과 공유하며 해결책을 찾아갔고,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명하게 노력하는 회사"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됐다. 결국 GM과 1년간 함께 노력해 최적의 배터리 개발을 위해 힘썼고,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 GM이 2010년 양산한 전기자동차 쉐보레 볼트(Volt)의 배터리 단독 공급자로 LG화학이 최종 선정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는 자동차전지 세계 1위라는 현재를 있게 한 시작이었다.
EPISODE.08현지화 경영으로 중국인의 마음을 얻다
중국은 개방이전에 글로벌 기업들을 포함한 상당수의 기업들이 내수시장에서 확고한 지위를 점하고 있어 후발주자들이 진입하기 쉽지 않은 배타적인 시장이었다. 중국에 진출하는 기업에게는 도전과 시련을 예고하는 시험무대이기도 했다. 이에 현지화 전략을 수립하고 생산, 판매, 연구개발, 인력채용 등 모든 것을 중국 현지에서 해결하는 '현지 완결형 사업구조'전략으로 공략에 나섰다. 중국 현지화가 적합한 곳에 ABS 생산기지를 가동했다. 화동지역, 철강, 강소성 등에 공장을 건설함으로써 동부 해안지역과 남부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시장 수요의 40~50%를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LG화학은 생산한 제품을 경쟁업체들처럼 대신 배달해주는 업체에 맡기지 않고 현지 고객들에게 직접 배달했다. '직접 판매' 시스템은 품질과 서비스 대응에서 완전한 차별화가 되었다. 어떤 기업 고객이 제품을 사용하고 1년이 지났을 무렵, 금형이 비틀어지는 결함이 발생했다며 제품을 직접 들고 온 일이 있었다. LG화학은 금형을 고쳐주는 것은 물론 더 나은 형태로 개선해주었다. 품질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고 해결해주는 모습에 고객들은 감동을 받았고 매출 급증의 결과로 이어졌다.

1995년 10만톤 규모의 PVC생산법인 설립을 필두로 1996년에는 ABS 생산법인을 설립했다. 2000년 두 회사 모두 매출 1억 달러를 달성했으며 2004년 기업 실적 평가에서 중국의 석유 및 석유화학기업 중 100대 기업을 뽑는 ‘백강기업'에 선정될 정도로 성공적인 중국 진출 외국기업으로 평가 받았다.
EPISODE.09공정기술 혁신으로 이룬 글로벌 넘버원, ABS
가전제품과 자동차 부품을 비롯해 우리 주변에 많은 제품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는 ABS.
LG화학은 ‘생산성과 품질’로 경쟁사를 압도하며 명실상부하게 글로벌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이는 제조원가를 낮추고 고품질의 제품 확보가 가능하게 한 ‘제조공정 기술 혁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성을 향상시킨 ‘압착 기술’과 품질을 향상시킨 ‘응집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ABS 제품이 나오기까지 중합, 응집 및 탈수, 건조, 압출의 프로세스를 거쳐야 한다. ‘압착 기술’은 건조공정을 개선해 생산성을 향상시켰는데, 이 기술은 콩기름 짜는 기계와 비슷한 원리의 압착기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이렇게 할 경우 시간당 생산성도 높아지고, 건조시설이 필요 없어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하지만 대규모 장치 사업의 특성상 어지간한 배포로는 결단하기 어려운 모험이었다. 새로운 기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거대하고 복잡한 기존의 장치와 설비를 뜯어내고 교체해야 했기 때문이다. 10여 년에 걸쳐 완벽한 실험과 리스크 대비로 세계 최초로 새로운 압착 공정장치를 성공적으로 가동시켰다.

‘응집 기술’은 응집 과정에서 불순물을 최소화하는 것이 제품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핵심 과제로 보고 연구를 시작했다. 생산 현장의 기술팀과 공정 엔지니어들이 서로 아이디어를 교환하다가 기술개발 TF팀을 구성하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했지만 실제로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LG화학의 집요한 노력은 2015년 마침내 기계적 응집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기계적 응집 기술은 ABS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매끄럽고 깨끗하며 내구성이 강한 ABS 제품 생산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더욱 넓힐 수 있는 경쟁력이 되었다.
EPISODE.10가능성에 주목했던 소형전지, 우주복에 채택되다!
LG화학의 전지사업은 그 어떤 사업보다도 오랜 기간 혹독한 위기를 극복하고 할 수 있다는 신념과 열정으로 많은 성과를 이뤄냈다. 리더부터 현장의 구성원까지 한마음으로 뚝심과 열정을 잃지 않고 집요하게 파고들어 결국 시장에서 인정받게 된 본보기다. LG화학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복 전지 공급업체로 채택됨으로써 그 기술력과 제품 개발 능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쾌거를 이루었다.

우주복에 장착되는 전지는 우주인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각종 장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전력을 공급하기 때문에 '우주복의 심장'으로 불린다. 우주복에 들어가는 전지 공급업체로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이며, LG화학은 육상(전기차), 해상(하이브리드 선박), 드론에 전지를 공급하는 업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주에까지 전지를 공급하는 업체로 도약한 것이다.

이처럼 LG화학은 현재와 미래의 세계 2차 전지시장을 선도하고 있지만 이러한 성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한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몇 번이나 수많은 난관에 부딪치면서도 미래를 바라보며 포기하지 않았기에 오늘날 LG화학의 전지 사업이 존재할 수 있었다.
EPISODE.11그린바이오로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UN의 발표에 의하면 세계 인구는 해마다 급속히 늘어 2050년에 100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 증가를 감당하기 위해 인류는 식량 생산량을 70% 이상 늘려야 한다. 인류의 미래 먹거리에 대한 불안과 고민은 그린바이오 산업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에 세계적인 화학기업들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농업에서 찾고자 앞다투어 그린바이오 산업에 뛰어 들고 있으며, LG화학도 2016년을 기점으로 그린바이오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2016년 LG화학은 작물보호제, 종자, 비료 등 우리나라 그린바이오 시장을 이끌어온 동부팜한농을 인수하여 자회사인 (주)팜한농을 출범시켰다. 국내 1위 화학기업으로서 농업 분야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한 행보다. 팜한농을 중심으로 LG화학은 그린바이오 사업을 통해 또 다른 고객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농업의 미래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팜한농의 기존 농화학사업을 고부가가치 첨단 농업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연구 인력을 두 배 가까이 확충하는 등 연구개발 역량에 집중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고객가치를 위해 남보다 먼저 차별화된 기회를 발굴하고 어렵고 힘들더라도 과감히 도전하는 LG화학의 시장선도 정신은 농업 분야에서도 그 빛을 발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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